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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22 14:30
참 자유를 위해 선택한 두 가지 가난
 글쓴이 : 더불어 숲
조회 : 970  



참 자유를 위해 선택한 두 가지 가난


                                                              김정식 (가수 겸 작곡가)


<하나>

 포항에 있는 작은 아들에게 다녀오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서 하시는 말씀.

“아이구. 5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3 시간 만에 와 버린다. 너무 빠르고 편해서 좋다.”

“무얼 타셨는데요?”

“KTX를 탔다. 조금만 더 주면 되는데 얼마나 편하고 빠른지 누구라도 그걸 타겠더라.”

“세상에. 똑같은 시간에 힘들게 일하고 돈 벌어 오는 사람은 무궁화를 타고 왔는데...”

‘바쁜 일도 없는데 놀러 다니시면서 비싼 KTX를 타시다니요’는 입안으로 삼켰지만, ‘누구라도 그걸 타겠더라구요? 그럼 무궁화는 누가 타고 다닌대요? 그게 편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나요? 다 알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KTX가 아무리 빠르고 편안해도 돈이 적게 든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무궁화를 타게 된다구요. 그냥 아들이 표를 사주어서 타고 왔는데, 빨리 와서 좋긴 하지만 바쁜 일이 있을 때 편리하게 탄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무궁화도 괜찮다고 말씀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라고 계속 혼자서 궁시렁댔다. 사실은 내려가실 때도 새마을호를 타고 가신다기에 역까지 바래다 드리면서도 조금 언짢았던 기억이 난다. 특별히 바쁘신 것도 아닌데 굳이 새마을을 타실 이유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포항까지 무궁화로 간다면 21,900원인데 새마을로 가면 35,100원이고, KTX라면 41,000 원이 든다. 조금 더 싸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천안까지 급행전철을 타고 가서 무궁화로 연결하면 18,000원으로 갈 수 있다. 고속버스를 이용할 때도 하루 스물아홉 번이나 있는 우등고속을 타면 26,900원이지만 시간표를 확인하여 하루 세 번 밖에 없는 일반고속을 타면 18,100원으로 갈 수 있다. 조금 불편하고 시간이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간 여유가 있어서 미리 인터넷으로 확인하여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적은 비용으로 갈 수 있다. 나는 늘 그렇게 하고 있지만, 시간이 맞지 않거나 바쁠 때는 또 얼마든지 어떤 차종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비행기까지도 기꺼이 이용한다. 문제는 가난에 대한 이런 선택이 우리의 몸은 다소 불편하게 할지는 모르지만 정신은 한없이 자유롭게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면서 늘 고생만 하셨던 아버지가 어쩌다 한 번 타신 것을 알고 있고 또 팔순을 바라보는 연로하신 분이므로 ‘도저히 그걸 못 받아들이겠다’ 는 심사가 아니라 스스로 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라고 봐야겠다. ‘조금만 더 주면 되기에 누구라도 타겠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에서 자칫하면 잃기 쉬운 가난 하나를 찾아낸다. 사람들은 자주 ‘조금만 더 내면 된다’는 함정에 빠져 더 내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최소금액을 망각해버린다. 여기서 전자는 왜곡된 짝퉁 웰빙이 되며 후자는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가난이 된다.

 마침 학교에서 돌아온 대학생 이삭에게 KTX를 화두 삼아 말을 건네었다.

“아빠가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대부분 우등고속과 KTX를 타고 다니고, 이런 자녀들을 위해 등골이 휘게 애쓰시는 부보님들은 오히려 반대라니까. 시간 때문이라면 모를까 편안함과 편리함 때문에 값을 더 내고라도 이용한다는 것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벌지 않은 돈이라고 해도 함부로 쓸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런데 아빠. 학생들은 통학증을 만들면 많이 할인된 가격으로 KTX를 탈 수 있어요. 그래서 KTX에 학생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나 아빠 말씀대로 얼마가 더 드는지를 비교해서 따져보지 않고 적은 돈으로 편리함을 살 수 있다거나, 힘들게 일하시는 어른들이 자식들이나 가족들을 위해 또 다시 힘들고 불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시는데 젊은이들이 그런 것에 무심하다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 지하철에서 만났던 젊은 수녀님들이 떠올랐다. 나는 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마도 학교에 다녀오는 듯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들을 재미있게 주고받았다. 마침 지하철 내에서 장사를 하는 아저씨가 자그마한 손부채를 팔고 있었는데, 중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혀 팔고 있다는 볼펜 크기의 부채 두 자루의 가격이 천 원이었다. 가격은 비싸지 않았지만 너무 허술하고 조잡한 데다 그 작은 부채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와 줄 것 같지 않아보였다. 그런데도 아저씨가 지나가자 얘기에 집중해 있던 수녀가 얘기를 멈추지 않은 채 무심히 천 원을 내밀어 부채 두 자루를 사서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거 금방 망가지게 생겼네. 왜 샀어? 얼마 쓰지도 못 할 텐데.”

“어때, 오백 원인데. 망가지면 버리지 뭐.”

무심하게 던져진 이 한 마디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면서 젊다 못해 어리게까지 보이는 그 수녀의 얼굴이 해맑아서 더 미웠다. 값이 싸다고 해도 잘 쓸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고, 또한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비록 오백 원일지라도 가난은 아니다. 더 나아가서 ‘그 오백 원이 어디에서 나왔을까?’를 생각해 보니 서글퍼지기 까지 했다.


 오래 전의 어느 추석 명절날 언제나 처럼 동생수녀가 왔다. 불란서 리용에 모원이 있고 노동사목을 하는 이 수녀회는 일반 수도공동체와는 달리 입회 후에도 가족들과의 유대를 계속 친밀하게 갖는다. 할 수만 있다면 공동체의 동의를 얻어 가족들의 애경사에 함께 하고, 일년에 한 두 차례는 가족과 수도공동체 서로 간에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나누기도 하기에, 가족들 입장에서 보면 시집간 딸과 별반 다름이 없어 참 좋다. 차례를 잘 마치고 다음 날부터 공동체 피정에 들어간다는 동생의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함께 역으로 갔다. 영등포역에서 조치원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조치원에서 공주까지 시외버스를, 그리고 공주에서 두 번 버스를 더 갈아타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첫 교통편이기에 800원 이면 되는 비둘기호(완행열차로서 아마도 지금은 없어졌음)보다 400원만 더 주면되는 통일호를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운행시간을 보면 더욱 그렇다. 통일호는 점심 먹고 타기에 딱 좋지만 비둘기호는 12시 출발이어서 점심 전에 나와야 한다. 그런데도 동생은 비둘기호를 샀다.

“내가 400원 보탤테니 통일호를 사면 안돼?”

“아이 오빠. 그러지 않아도 돼. 400원이 없어서가 아니야.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공동체에 청하면 돼.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난의 선택이야. 가난을 살려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해. 가난한 사람들은 설령 돈이 있어도 주어진 것 중에 가장 낮은 것을 선택하거든.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위해 선택한 우리 공동체의 삶의 방식이니까 오빠가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이해해 줘. 우리도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언제든지  무엇이나 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둘기호를 타고 가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해. 점심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나오면 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간다는 것이 아무런 긴장도 없고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몰라.”

 가슴에 맺혀진 그 날의 기쁜 눈물 한 방울은 이후 내 삶에 아름다운 등불이 되어주었다. 한 주일이면 다섯 차례 정도의 초청행사를 다니고 그중 적어도 두세 번은 기차나 고속버스 혹은 비행기를 탄다. 나는 모든 교통수단의 회원에 가입해서 미리미리 시간표를 확인하고 예매를 해둔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장 가난한 방식으로. 시내에서는 나만을 위해서 택시를 타는 일은 거의 없고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좌석버스는 제외)를 타며, 시외로 갈 때도 특별하게 바쁜 일정이 아니라면 기차는 가장 낮은 등급인 무궁화호를 타고 버스는 일반고속을 탄다. 일정이 너무 많거나 벅차서 쌓인 피로가 강의나 공연에 지장을 줄 정도면 비행기나 KTX를 탄다. 내 수입은 굳이 그런 것을 가리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하고 결정은 늘 나 혼자 자유롭게 한다. 가끔씩 짐이 많거나 피곤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편안하고 빠른 것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이 없지 않지만, 나는 늘 내 정신의 자유를 위해 육체의 수고로움을 기쁘게 감당해 낸다. 무궁화호 기차를 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일반고속버스를 타려면 조금 인내심이 필요하다. 자본과 물질의 풍요로움 때문에 몸살을 앓아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날이 갈수록 아래로 곤두박질인 요즈음, 일반고속을 찾기란 모래에 섞인 황금조각 만큼이나 드물다. 포항만 해도 심야우등을 포함한 우등고속이 스물아홉 대인데 반해 일반고속은 딱 세 대이지 않는가. 어쩌다 미리 시간을 알아두지 못한 경우에는 1~2 시간쯤은 우습게 기다려야 된다. 그럴 때를 위해 늘 책을 준비해 다니지만 나처럼 일반고속을 기다리는 다른 가난한 이웃들이 터미널 의자에서 더위와 지루함에 지쳐 졸고 있는 모습을 대할 때면 책을 읽으며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사치스럽게 여겨져서 나도 책을 덥고 자다가 차를 놓친 적도 있지만 행복한 추억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격등급이 낮은 기차나 버스에 함께 탄 이웃들이 훨씬 정겹고 사람냄새가 더 진하게 난다는 것은 그리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공허한 얘기가 된다. 물론 다른 이와 함께 동반해야 할 경우라면 당연히 상대의 입장에 우선적으로 맞추는 감각쯤은 지녀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신도 타인의 가슴에 평화로 다가가지 못한다면 가치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 번쯤 내 의견을 겸손하게 말해볼 수는 있겠지만 주장이나 강요여서는 안 되고, 서로 의견이 다르면 재빨리 상대의 의견 쪽으로 발맞추어 가야한다. 이렇게 가끔씩이라도 기회가 와서 편안하게 가게된 것을 내심 기뻐하면서...

실제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나는 때로는 그런 기회가 그립기도 하다.


 이런 자유로운 선택의 가난 때문에 나는 늘 기쁘고 행복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 보았더니 불편함과 피곤함 때문에 기쁨이 깨져 버렸다면 바로 그만 두어야 한다. 아무리 좋아보여도 내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 있고, 선택은 이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 안에서 지극히 나다운 방식의 자유로운 선택의 가난은 얼마든지 있고, 때로 하느님께서 주신 창의성을 적극 활용하여 나만이 살아낼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을 새롭게 개발할 수도 있다.

한 마디 더 덧붙이면, 이렇게 자유롭게 선택된 가난으로 아껴지고 모아진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는 또 다른 문제이다. 


<둘>

<가난한 새의 기도> 이해인 시/김정식 곡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 주십시요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도록 해 주십시오.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선택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가진 것 나누어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 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서도

기쁨이 넘쳐날 약속의 삶에 햇살로 넘치는 축복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나에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노래 가사로 되면서 원시의 순서가 조금 바뀌었음)


 이해인 수녀가 쓴 이 시에서 우리는 새들의 본능을 통해서, 가난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 주는지 잘 새겨볼 수 있다.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만큼만 먹어야 하고, 어디든지 자유롭게 옮겨 다니기 위해서는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어야 한다는 것을. 새들이야 정신이 아니라 본능으로 이렇게 하고 있지만 영혼이 깃들어 있는 우리는 삶의 정신으로 이 가난을 식별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지난여름 어느 지인의 배려로 가게 된 몽골문화탐사에서 이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고비사막으로 가기 위해 울란바타르 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부 내륙까지 이동한 후, 끝없는 사막을 가고 있었다. 길이 따로 나 있지 않기에 매번 길이 생겼다가 다시 바람에 의해 없어지고 마는 신기루 같은 막막한 사막을 끝없이 가야했다. 몇 시간을 달려도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 한 그루 만날 수 없는 열사(熱沙)의 길을 일반 차량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구 소련제 지프트럭으로 타고갈 수밖에 없으니 그 고행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시원한 물과 에어컨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너무 덥고 답답해서 덜컹거리는 창을 열어 놓으면 모래먼지만 들어올 뿐, 밖은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이다. 간간히 눈에 띄는 것은 키 낮은 풀들과 그것을 먹고 사는 말과 양떼들, 그리고 그들의 주인인 유목민 가족과 그들의 삶터인 유랑극단의 천막을 닮은 겔뿐이다. 아니 더 있다. 여기저기 을씨년스럽게 뒹구는 짐승의 뼈들. 일행 8명은 저마다 우리가 이곳에 올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이를 들먹이면서, ‘고비사막에 가서 별을 보면 아름답다고? 별을 보기도 전에 열에 타죽겠네. 별이 무슨 대수야? 그 별 못 보면 죽는대? 돌아가서 가만 두나 봐라’ 하면서 푸념을 해 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유목민들은 누군가를 헐뜯고 비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세 시간 혹은 서너 시간을 땡볕을 받으며 걸어가야 한다. 이웃과 싸우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멀리 있는 이웃 유목민을 제외하면 일단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이다. 물론 모든 북반구 지역이 다 그렇지만 몽골에서 또한 우리나라에서보다  별을 따기가 훨씬 수월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사막에 도착한 첫 날밤 알게 되었다. 위도 상으로 높은 쪽이기도 하지만, 바다 한 자락 없는 나라의 천지 사방이 틔여 있어서 지평선에서 지평선 사이를 하늘이 덮고 있다. 다시 말해서 땅 끝에서 하늘이 시작되어 반대 편 땅 끝까지 이어져 있고, 그 하늘에 촘촘히 별들이 박혀있는데 손가락 하나 찔러 넣을 틈이 없다. 대기 오염이 적은 이 나라에서는 밝기등급이 낮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까지도 모두 볼 수 있기에 마치 천체우주관에 들어가서 천체모형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비로소 낮에 푸념을 해 댔던 바로 그 분에게 한없는 감사와 찬양이 이어졌다.

“세상에. 이런 곳을 못 보고 죽으면 할 수 없지 뭐.”

“그러기에 우리를 보내면서 사막에 도착하여 밤에 별이 뜨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구나. 돌아가면 이 고마움을 뽀뽀로 갚아야지.”

“우리 아이들에게 유럽 배낭여행보다는 꼭 몽골여행을 권하고 싶어요. 비용도 비용이지만 모든 것이 풍요롭기만 한 서구 여행보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지만 그래서 가슴이 차오르는 곳. 그리고 모진 고생 끝에 사막에 닿아 이 별들의 잔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어쨌든, 이렇게 별을 따기는 쉬워도 사람을 만나기는 또 다시 하늘의 별따기보다는 어려운 몽골 인들이 사는 겔은 항상 이웃을 위해 열려있다. 누구든지 지나가다 햇볕과 열을 피해 쉬어갈 수 있도록 아예 잠금장치 자체가 없다. 이것은 모든 몽골 유목민들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여행자는 사막을 가다가 겔을 만나면 특별한 절차나 허락 없이 들어가고, 언제 올지도 모를 이웃을 위해 독특한 보온병에 준비되어 있는 따뜻한 차와 말린 고기 혹은 과자 등을 먹으면서 쉴 수 있다. 하룻밤을 묵고가야 하는 이웃을 위해잠자리의 위치도 늘 미리 배정되어 있다. 우리를 인도하는 체첵이라는 아가씨(울란바타르 대학 한국어학과 수학)에게 물었더니 이런 배려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댓가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감사의 마음을 굳이 표현하고 싶으면 사탕 몇 개나 지니고 있는 자그마한 물건 등을 놓고 오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막에서 만난 아무 겔이나 들어가서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고 있었는데, 양떼를 돌보다가 돌아온 집주인과 근처에서 놀다 온 자녀들이 오히려 손님처럼 겔 입구에서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마주했고 얼굴마다에 기쁨과 반가움이 가득했다. 주인아저씨는 겔 여기저기에서 연신 무언가를 꺼내어서 대접했는데, 말린 말고기와 말 젖으로 만든 차는 익숙치 않아서 먹기 어려웠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온 친절은 지친 영혼의 쉼터가 되기에 충분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나눌 것은 많은 가난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일까? 늘 대문을 걸어 잠그고 다시 현관문을 잠그며 내가 거하는 방과 주방 세면장 등 거의 모든 방에 마련된 잠금장치를 떠올려 본다. 꼭 필요한 것일까? 또한 어딜 가나 넘쳐나는 사람 때문에 넌더리가 나고, 이웃들은 또 왜 그리 거추장스러운가? 서로에게 주는 소음 피해며 애완동물로 비롯된 시비에서부터 목숨과 바꿔버린 골목주차 경쟁까지,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우리네 삶에 지친 사람은 꼭 한 번 몽골 유목민의 겔로 찾아가 보라.

이웃이 얼마나 소중해지는지...  

  다시금 겔 내부를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또 한 번 경탄을 하게 된다. 어떤 겔에 가든지 거의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에 볼 수 있었던 사진액자들. 한 액자 안에 가족들의 여러 사진이 모여 있는 것이 새록새록 정겹다. 사진첩에게 한 번 자리를 내어 주었다가 이제는 PC 바탕화면의 가족사진이라는 폴더에게 다시 자리를 내어주고 컴컴한 벽장에 처박혀 있는 우리 집의 옛날 사진액자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액자 밑에 자그마한 문갑과 옆에 놓인 단순한 그릇장이 방안 세간의 전부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축들의 먹이가 되는 풀을 따라 자주 이동하면서 살아야 하기에, 설치하는데 한 시간 철거하는데 삼십 분이 걸린다는 이 겔 안에 세간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만큼 힘들어진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 둥지를 트는 새들의 본능은 몽골인의 가난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저 자연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살아가는 삶의 자유. 그 안에 고난이 왜 없을까마는 그런 생각은 뒤로하고 우리는 그들의 가난과 단순한 삶의 기쁨만을 나누어 갖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 내 방에 있는 물건더미들을 차례로 떠올려본다. 그것들은 모두 꼭 필요한 것들일까? 확실하게 아니다. 4 년 전 이사 때 이삿짐을 옮겨주는 분들 중 책임자가 분명히 내게 말했다.

“오늘 일하면서 무척 힘들었습니다. 일이 많은 것은 둘째로 치고, 왜 우리가 버려도 아깝지 않을 이런 잡동사니를 옮기고 정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니 더 힘이 들었어요. 일다운 일을 하고 돈을 받아야 마음이 뿌듯하거든요. 오늘 옮긴 짐들 중에 80%는 이미 버렸거나 이전 집에 버려두고 왔어야 했어요. 부탁입니다. 이렇게 사시면 안주인이 힘들어요. 다음에 이사하실 때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다 버리고 가세요.”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어서 나도 웃으며 꼭 그러겠다고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무엇이든 사지 않고 얻거나 주워다 쓰기에 그렇다고 하기에는 우리 집은 정도가 지나치다 못해 이미 위험수위에 와 있다. 사람이 거할 공간을 물건들이 너무 많이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결코 좁지 않은 공간에서 우리는 몹시 비좁고 불편하게 살고 있다. 불편에 지쳐 쏟아지는 가족들의 비난의 눈총을 화살처럼 받아내면서도 나는 아직도 쓸만한 물건들을 얻어오고 주워오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가난일까? 몽골 유목민의 겔이 바로 대답해준다. 아니라고. 척박한 몽골이라고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버린 물건이나 얻을 물건이 전혀 없겠는가? 무엇이든 소유하는 순간부터 꼭 그만큼의 수고로움과 불편이라는 고난이 예비 되어 있기에, 당장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지혜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처럼. 아니 알아차리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알아차린 것을 그대로 삶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시(詩)로 돌아가 보자.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선택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가진 것 나누어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 주십시오.


가난 자체만을 위해 사는 가난보다는 사랑을 혹은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라면, 아끼고 주워오는 것뿐만 아니라 버리고 나누는 것에 더 열심이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가난의 모습은 집착이라고 봐야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위험을 넘어서 언제라도 당당하게 떠날 수 있으며, 늘 텅 비어있는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기 위해서 우리는 몸무게와 함께 몸에 지닌 것의 무게를 줄여나가야 한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면 온 몸에 걸려있는 것이 너무 많다. 핸드백이나 책가방은 당연한 것이라지만, 치렁치렁한 옷매무새가 그렇고 장신구나 미용을 위한 보조기구가 그러하며, 휴대폰에 이어폰에 CD플레이어와 MP3를 넘어서서 위성DMB폰에 이르기까지, 꼭 필요하지 않아 줄일 수 있는 무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전체적으로 가난한 몽골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이름을 솔롱고스(Solongos

무지개와 같이 아름다운 곳)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옛날 중국에서 부르는 칭호를 따라

몽고(懵古-무지몽매하고 오래되었다는 뜻)라고 하면 몽골 사람들은 슬프다. 척박하고 가진

것 없지만 가난한 자연에 섞여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애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몽골인

들을 생각하면서 삶의 한 확신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꼭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으며,

이렇게 선택한 가난한 삶은 우리에게 참 기쁨과 자유를 선물해 준다고. (2006년 8월 29일)



-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분이세요~!

   글이 너무 아름답고 부끄러움을 일깨워 주네요.

   감동 받아서 퍼날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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